천연두(smallpox, 두창이라고도 함)의 퇴치는 백신의 효과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로 생각된다. 천연두라는 질병은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을 통해 잘 알려져 있는 질환이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천연두가 전파되면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대규모로 희생되기도 하였고, 소의 두창(우두)을 이용해 사람의 천연두를 예방하는 종두법은 최초의 본격적인 예방접종으로 간주되고 있다. 국내에도 지석영 선생님을 통해서 종두법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최소 3천 년 동안 인간을 감염시켰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20세기에도 총 3억 명, 매년 4백만 명의 사람들이 천연두로 죽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67년 세계보건기구는 천연두가 토착화된 나라들을 대상으로 천연두 퇴치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코로나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여러 활동들 – 예방접종, 노출자 조사, 질병 감시 활동, 홍보 활동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1977년 마지막 환자가 확인되었고 2년간의 모니터링 기간 이후에 천연두 퇴치가 선언되었다. 천연두 퇴치 프로그램은 총 3억 달러의 예산이 사용되었는데, 반면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매년 전 세계적으로 10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1
천연두 이후 홍역 바이러스와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예방접종을 이용한 퇴치 대상으로 대두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 퇴치를 향해 다가가고 있던 소아마비가 다시 증가하게 되는 사건이 나이지리아에서 일어나게 되는데, 2003년 여름 나이지리아 북부 세 개 주에서는 소아마비 백신에 대한 주정부 차원의 보이콧이 진행된 것이다. 당시 나이지리아는 전 세계 소아마비 환자의 절반 정도가 발생할 정도로 소아마비가 유행하던 나라였다.
소아마비 백신에 대한 거부의 직접적인 이유는 백신 안에 무슬림 여성들이 아이를 가지지 못하도록 하는 성분과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배경으로는 북부 사막 지형의 이슬람 문화권과 남부 기독교 문화권으로 나누어지는 나이지리아의 정치 경제적인 상황, 서구 원조 중심의 보건 의료 체계가 현지의 의료 여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였던 점, 그 직전 서구의 백신 제약회사들이 진행하였던 항균제와 백신의 임상 시험에 대한 논란 등등 많은 정치적, 문화적 상황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백신 거부 움직임이 진정되는 데에는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수차례 백신의 성분에 대한 실험을 진행하여야 하였고, 많은 무슬림 국가들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백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종교적으로 어긋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현지의 지도자들과 주민들을 안심시켰다. 또한 백신의 제조회사도 무슬림들이 다수 거주하는 아시아 국가의 제약회사로 변경하였다. 이러한 정치적인 활동들 이외에도 지역 사회 주민들을 직접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소아마비 예방접종 활동은 재개될 수 있었다.2, 3
이런 사례는 백신 거부가 정치적 문화적인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으며 단순히 사실을 홍보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코로나 백신을 둘러싼 여러 논란에 대해서도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전파력이 더 높은 오미크론 변이가 주 유행주가 되고 다시 한번 코로나 환자가 급증할 가능성을 고려하여 백신 거부 움직임에 대해서도 선제적인 대응이 요구되는 때이다.
울산의대 감염내과 김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