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코로나19) 첫 번째 확진자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지 이제 100일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많은 생활환경이 바뀌었고, 근무 행태도 변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인천광역시 의료원에서도 그동안 감염관리 지침을 수없이 개정하고 근무환경을 바꿔가며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염병에 열심히 대응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80% 정도의 환자는 가벼운 감기 증상 또는 거의 증상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경증으로 지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바이러스 배출은 증상 발생 며칠 전부터 시작되어 수 주간 지속되므로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다닐 수 있는, 분명 대응하기 어려운 바이러스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또한 기존의 감기와는 달리 중증 폐질환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고령이나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에서는 어쩌면 당연할 수 있겠지만, 30~50대의 비교적 건강했던 성인에게도 일부는 치명적인 결과를 보일 수 있는 점이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기존의 지역사회 코로나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항체가 형성되더라도 수개월 내에 금방 떨어질 가능성도 있고, RNA 바이러스의 특성상 변이가 쉽게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2003년 SARS처럼 자연히 사라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신환자수가 줄어들고 완치된 사람들이 많아져 일상으로 돌아갈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생활방역”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환경들을 바꾸고 있습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4월 22일 브리핑에서 내놓은 생활 속 거리두기(생활방역) “집단방역 (안)”에는 1) 공동체가 함께 노력하기, 2) 공동체 내 방역관리자 지정하기, 3) 공동체 방역지침 만들고 준수하기, 4) 발열 확인 등 집단 보호, 5) 방역관리자에게 적극 협조하기 등 다섯 가지를 기본수칙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의료계에서도 이대로 일상으로 돌아가도 될까요?
우리의 진료환경은 일반 지역사회보다는 훨씬 감염병에 맞닿아 있습니다. 만성질환 진료를 하러 와서는 감기약도 처방해 달라고 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고, 일부 과들은 환자의 대부분을 급성 호흡기 질환 진료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코로나19는 환자가 자각하지 못하는 증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달 초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코로나19 의료인 감염 통계를 보면 확진자를 진료하는 인력보다 그 밖의 일반 진료 중에 감염된 사례가 더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4월 3일 이후 확진자 진료인력 감염 사례는 통계에 반영되지는 않음)
< 의료인력 주요 감염 경로 >
* 4.3일 0시 기준, 4.5일 기준 간호사 2명 확진자 진료 과정 중 감염 노출 의심, 역학조사 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본 적이 없는 새로운 환경입니다.
첫째, 코로나19 의심환자들을 다른 환자와 의료진으로부터 분리해서 진료할 방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질환의 특성을 봐서는 임상증상만으로는 코로나19를 의심할 방법은 없으므로, 결국 급성호흡기감염(감기 포함) 환자를 다른 만성질환자들과 분리해서 진료를 해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진료하는 환경과는 전혀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않고는 어렵습니다. 여건이 되는 의료기관에서는 기존의 공간을 둘로 분리해서 준비를 할 수 있겠으나, 대부분의 개원가에서는 쉽지 않으므로 다른 방안을 고려해야 합니다. 최근 경기도 하남시에서 시도하고 있는 “호흡기감염병클리닉”도 한 가지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호흡기 증상이 있어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진료할 공간을 보건소에서 준비하고 지역사회 의사회에서 돌아가면서 진료하는 시스템입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각자의 환경에 가장 적당한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둘째, 일기예보를 보고 비가 올지 예측하고 우산을 가지고 나가듯이 코로나19의 유행상황을 미리 예측할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인플루엔자의 유행 시점은 전국에 200여 개의 의료기관에서 “인플루엔자 유사증상”을 모니터링해주고 계셔서 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그중에 50여 개의 의료기관에서는 호흡기 검체를 채취해 질병관리본부로 보내서 어떤 바이러스가 시기별로 유행하는지를 알 수 있게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기존에 감기 바이러스 정도는 마스크 착용 등으로 검체 채취를 했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좀 더 준비를 하고 검사를 해야 합니다. 검사를 시행한 후에 환기 문제도 있고 검사 후 확진자가 나왔을 때 대처방법에 대해서도 미리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다음 그림은 코로나19 이전에 사람 코로나바이러스의 계절성 유행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코로나19 또한 이런 계절성 호흡기바이러스에 편입되는지 감시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런 감시체계는 기본적으로 환자에게 시료를 채취해야 하기 때문에 의료인의 참여가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 그림 1 > 사람 코로나바이러스 감영증 (2015년 1주~2020년 18주)
출처: 질병관리본부 감염병포털, 표본감시감염병, 급성호흡기감염증
지금까지 이 바이러스는 우리의 가장 취약한 곳들을 들춰내 오고 있습니다. 전 세계 의료 선진국들마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의료환경은 사회 각 분야에서 준비하는 “생활방역”보다 한 단계 높은 고강도의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변화의 주체는 정부, 학계, 현장에 있는 의료인, 그리고 국민 모두이며, 이 협력의 관계가 잘 작동할 때 코로나19와 함께 지낼 “새로운 일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